페르귄트 모음곡 1번 OP.46 (Peer Gynt Suite No.1) / Edvard Hagerup Grieg
2013년 3월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코리아솔로이츠 오케스트라 지휘 김봉미
Edvard Grieg - Peer Gynt Suites - 1 and 2
게시일 : 2013. 5. 5.
Edvard Hagerup Grieg (1843 - 1907)
Peer Gynt Suites 1 and 2
Incidental music to Henrik Ibsen's play. (1875, Op. 23)
Orquesta Sinfónica de RTVE Guillermo Garcia Calvo - Conductor
Suite No. 1, Op. 46 (1888) :
I. Morning Mood (Morgenstemning) 00:01
II. The Death of Åse (Åses død) 04:31
III. Anitra's Dance (Anitras dans) 09:39
IV.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I Dovregubbens hall) 13:14
Suite No. 2, Op. 55 (1891) :
I. The Abduction of the Bride. Ingrid's Lament
(Bruderovet. Ingrids klage) 15:48
II. Arabian Dance (Arabisk dans) 20:14
III. Peer Gynt's Homecoming (Stormy Evening on the Sea)
(Peer Gynts hjemfart (Stormfull aften på havet)) 24:58
IV. Solveig's Song (Solveigs sang) 27:36
BBC Proms 2001 Ed. Grieg Peer Gynt
Manfred Honeck BBC Singers Goetenburg S Orch Royal Albert Hall
게시일 : 2016. 3. 29.
Эдвард Григ «Пер Гюнт» / Edvard Grieg Peer Gynt
17 марта 2013. Премьера
Литературно-музыкальная композиция «Пер Гюнт»
Текст: Генрик Ибсен
Музыка: Эдвард Григ
Чтец: Сергей Толстиков
Исполняет Большой симфонический оркестр Пермского
театра оперы и балета
Дирижер: Дамир Максутов
Режиссер: Ольга Эннс
Театральная видеостудия, 2013
Peer Gynt HD
게시일 : 2015. 7. 10.
1867년 출간. 페어는 몰락한 지주의 아들로서, 어머니의 절실한 소원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재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나친 공상에만 빠진다.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산속 마왕(魔王)의 딸과 결탁, 혼을 팔아 넘기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미국과 아프리카에서는 노예상을 하여 큰돈을 벌고 추장의 딸 아니트라를 농락하며 거드름을
피우다가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정신이상자로 몰려 입원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고향이 그리워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배가 난파하여 무일푼이 되어
고향 땅을 밟는다. 거기서 늙은 마왕으로부터 빚독촉을 받으나 최후까지 혼을 팔아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 남아 지금은 백발이 된 옛날의 애인 솔베이지의 팔에 안겨 죽는다.
근대인의 부(富)와 권력 추구에서 오는 정신의 황폐, 인간의 과대한 야망의 덧없음을,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간 방탕한 연인을 백발이 될 때까지 가슴 속에 간직한 여인의
청순무구를 대조하여 최후의 구원을 발견케 한다. 입센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분방한
상상력을 구사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희곡을 토대로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는
같은 제목의 부수음악을 작곡, 1876년에 초연하였다. 뒤에 편곡하여 각 4곡으로 된
두 가지 관현악용 조곡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제1조곡의 제3곡 <아니트라의 춤>,
제2조곡의 제4곡 <솔베이지의 노래>는 잘 알려진 곡이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는 자신의 음악이 서정적이어서 극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입센의 환상시극 [페르 귄트]를 작곡함에 있어서도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입센의 위촉을 받아 무대 음악으로 이 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31세 때 이 곡을 쓰기 시작하여 다음해 여름에 완성하였는데 그의 명작이 되었다.
이것은 처음에 피아노 2중주의 형식으로 출판되었다가 후에 오케스트라로 편곡되었다.
이 극음악은 5곡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행진곡, 무곡, 독창곡, 합창곡 등 모두 23곡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리그는 후에 이 극음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4곡을 뽑아
제1모음곡으로 하였으며, 그 후에 다시 4곡을 선정하여 제2모음곡으로 만들었다.
▣ 극의 줄거리
제1막 어려서 부친을 잃은 페르 귄트는 편모 슬하에서 자랐는데,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게으름이 몸에 밴 데다가 허황된 꿈만 좇고 있기 때문에 모친 오제의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솔베이그라는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마을 결혼식에 나가서 다른 남자의
신부 잉그리드를 빼앗아 산속으로 달아난다.
제2막 페르 귄트는 얼마되지 않아 곧 잉그리드를 버리고 산중을 방황하다가 푸른 옷을
입은 아가씨를 만난다. 곧 뜻이 맞아서 그녀 부친 있는데로 간다. 그곳은 산에서 사는 마왕의
궁전인데, 그녀는 그 마왕의 딸이었다. 마왕이 페르 귄트에게 그의 딸과의 결혼을
강요하므로 그는 깜짝 놀라서 그곳을 빠져나오려 한다. 마왕은 화가나서 부하인 요괴를
시켜서 그를 죽이려 들지만, 그때 마침 아침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고 마왕의
궁전은 순식간에 무너져, 페르 귄트는 간신히 살아 남는다.
제3막 산에서 돌아 온 페르 귄트는 잠깐 솔베이그와 같이 산다. 어느날 모친 생각이 나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모친은 중병으로 신음하다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페르 귄트의 곁에서 운명하고 만다.
모친을 잃은 페르 귄트는 다시 모험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
제4막 각지를 돌아다니는 동안에 큰 부자가 된 페르 귄트는 어느날 아침 일찍 모로코의
해안에 닿는다. 그러나 사기꾼에게 걸려서 다시 빈털털이가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언자
행세를 하여 순식간에 거부가 되어 아라비아로 들어간다. 거기서 베드윈족 추장의 주연에
초대된다. 아라비아 아가씨들과 추장의 딸 아니트라의 관능적인 춤으로 대접받은
페르 귄트는 아니트라의 미모에 빠져 또다시 전재산을 탕진하고 만다.
제5막 그 뒤 페르 귄트의 생활은 여전히 파란만장. 마지막에는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으로 큰 부자가 된다. 이제 늙어버린 페르 귄트는 고국의 산천이
그리워서 그 동안에 번 제물을 싣고 귀국길에 오른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육지를 눈앞에
두고 풍파를 만나 그의 배는 재물을 실은채로 물에 갈아앉아 버린다.
다시 무일푼이 된 페르 귄트는 거지나 다름없는 꼴로 산중 오두막에 다다른다. 그곳에는
이미 백발이 된 솔베이그가 페르 귄트를 기다리고 있다.
페르 귄트는 그녀를 껴안고 <그대의 사랑이 나를 구해주었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진다. 늙고 인생에 지친 페르 귄트는 이윽고 솔베이그의 무릎을 베고, 그녀가
노래하는 상냥한 자장가를 들으면서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다.
◈ 에드바르 하게루프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 1843.6.15 ~ 1907.9.4)
노르웨이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였다. 베르겐에서 출생하였으며, 극작가인 입센과
비교할 정도로 유명한 민족주의 음악가이다
그리그의 증조부는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의 베르겐에 이주해 온 사람이며,
어머니는 매우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므로 그는 최초의 음악교육을 어머니에게서 받았다.
15세 때 독일에 유학하여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 모셸레스, 리히터, 라이네케
등에게 배웠다. 당시 독일에 유학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 음악가의 대부분은 그대로
독일에 머물러 독일의 음악가들과 어울리고 싶었으나 그리그는 졸업 후 곧 스칸디나비아로
가서 가데(게제)를 알게 되었고 다음 해에는 노르드라크와도 만나 민족주의적인
음악사상을 품게 되었다. 1867년 4촌누이인 가수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하여 귀국,
노르드라크와 협력하여 1869년 오슬로 크리스티아니아에 음악협회를 설립,
1880년까지 그 지휘를 맡아 보았으며, 한편으로 민족색이 풍부한 명곡을 차례로
내놓았다. 1880년 이후에는 고향인 베르겐으로 물러나와 작곡에 전념하였고 그의 간단한
작업장이 지금도 국립박물관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 곳은 피오르라고 하는 빙하로 생긴
골짜기가 강입구로 된 해안선 근처까지 뻗어나온 것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서, 숲 사이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그는 작곡가로서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또 지휘자로서
몇 차례나 외국에 갔으나 본거지는 늘 조국이었다. 만년의 약 10년간은 학생 때 앓은
폐병이 재발하여 어두운 나날을 보내야 했고 64세 때까지 살다 출생지에서 사망했다.
유골은 작업장 아래에 있는 피오르의 벽면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안치 되었다.
그리그는 동년배인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와 같은 선이 굵은 작곡가는 아니나 섬세한
서정시인적인 음악가였다. 그 때문에 오페라를 결국 한 곡도 완성하지 못하였고, 유일한
교향곡인 교향곡 다단조도 자신이 연주금지곡으로 붙였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교향곡 이외의 소나타 형식을 사용한 대작에서도 성공했다고는 하기 힘들다. 구성력이나
주제의 논리적인 발전에 약한 면이 있었다.
오직 하나의 예외로는 피아노 협주곡 A단조(1868)으로, 이는 25세경의 젊었을 때의
것이다. 그리그의 특징은 첫째로 생애의 거의 모든 시기에 걸쳐 계속해서 작품을 쓰고
있었으므로 가곡을 보면 그의 예술의 발자취를 잘 알 수가 있다. 가곡 다음으로는
피아노의 소곡이 중요하며 10권 66곡으로 된 <서정소곡집> 등 그 수도 가곡만큼 많다.
관현악곡 분야에서도 성공한 것은 피아노의 <서정소곡집> 가운데에서 4곡 정도는
자기가 골라내 오케스트레이션한 <서정모음곡>(1891)이라든가 입센의 극에 곡을 붙인
<페르 귄트 모음곡>(1874-1875) 등 소곡의 모음이다. 그의 실내악곡 중에서는
비교적 연주기회가 많은 제3바이올린 소나타(1878)도 실질적으로는 노르웨이의 노래와
춤의 접속곡 같은 데가 있다.
◈ Nina Grieg , née Hagerup (1845.11.24 - 1935.12.9)
그녀는 1867.6.11.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그녀의 사촌인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워드 그리그 (Edvard Grieg)와 결혼했습니다.
1907년 그리그가 사망한 후 그녀는 덴마크로 이주했다. 90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화장을 받았고 그녀의 유골은 그리그의 유골과 함께 트롤호겐 (Troldhaugen)
근처의 무덤에 놓여졌다.
'가곡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쇼팽 연습곡 마장조 작품 10-3 (슬픔,이별의 노래) ☆ (0) | 2018.05.03 |
---|---|
[스크랩] 솔베이지의 노래 - Lesley Garrett, 서울 모테트 합창단, 아침기분 ★ (0) | 2018.05.03 |
[스크랩]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바장조 K.467 (엘비라 마디간 OST) ★ (0) | 2018.05.03 |
[스크랩] Ballet "Swan Lake" - Pyotr Ilyich Tchaikovsky ☆ (0) | 2018.05.03 |
[스크랩] 성탄절 가까운 - 신경림 (0) | 2017.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