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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鳳仙花(1920년 작곡)- 이인숙 ★, 최삼숙(北朝鮮歌曲), 김천애(1940년대 녹음) ☆

채픒린 2018. 5. 3. 20:17

 




                                   鳳仙花 - Soprano 李仁淑           2014. 4. 16. 00:22  朴泳柱 作                         

North Korean Song "Garden Balsam" 北朝鮮歌曲「鳳仙花 최삼숙 노래

게시일 : 2012. 6. 28. North Korean song 봉선화(Garden Balsam)

봉선화 -김형준 시, 홍난파 곡, 채리숙 노래

게시일 : 2017. 1. 16.

         이규도-봉숭아(봉선화) [ 작시:김형준 작곡:홍난파 ]

게시일 : 2017. 5. 13.  소프라노 : 이규도

◈ 홍난파 (洪蘭坡, 일본식 이름 : 森川潤 모리카와 준, 1898.4.10 ~ 1941.8.30,

경기도 남양 둔지곶면 활초동)는 한국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활동하였는데

본명은 홍영후(洪永厚)이지만 홍난파로 더 알려져 있다. 한동안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작품 중 〈봉선화〉. 〈고향의 봄〉.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고향 생각〉등 십 여곡의 가곡과 〈오빠생각〉. 〈나뭇잎〉. 〈개구리〉 등 111개의

동요를 작곡하여 천재 작곡가로 알려졌다. 아호는 난파(蘭坡)이다.

봉선화 - 홍난파, 노래 : 김천애 (1940 년대 녹음)

작품명 : 봉선화, 작곡: 홍난파, 작사: 김형준  노래: 김천애 (1919 -- 1995)
이 노래가 처음 세상에 나오기는 3.1운동의 다음해인 1920년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정작 널리 퍼져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리게 되기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40년대의 일이다.

김천애가 봉선화를 제일 처음 무대에서 부른 것은 1942년 봄 일본 동경 무사시노
음악학교를 졸업한 직후 그곳 히바야 공회당에서 열렸던 신인음악회서의 일이다.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섰지요. 청중들의 앵콜로 봉선화를 불렀는데 청중들의 박수 갈채가

떠나갈 듯 했죠.

공연이 끝나자 청중 중의 교포들이 무대 뒤로 찾아와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당시의 감회를 회상하듯 김천애는 눈물을 글썽인다.
봉선화는 빅터와 콜롬비아 두 레코드회사에 취입되면서 더욱 크게 히트, 붐을 일으켰다.

일본 경찰 당국은 드디어 나라를 잃은 슬픔을 봉선화에 비유한 이 노래의 가사를 문제 삼아

이 노래를 못 부르도록 했다. 그러나 김천애는 그 후에도 무대에 설 때 마다 이 노래를 불러

여러 차례나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러기에 봉선화하면 누구든 김천애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김천애 (金天愛, 일본식 이름 : 龍宮天愛, 1919 ~ 1995.3.30)는 소프라노 성악가
김천애님은 평양정의 여자 고등학교를 나와 일본 무사시노 음악학교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후 국내에 돌아와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창설에 힘을 기울여

1948년 성악과장으로 제직했고 그후 숙명여대 음대교수, 음대학장등을 역임하다가

1972년 시민회관(지금 세종문화 회관터)에서 갖은 독창회를 마지막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했지만 반체제 인사라는 이유로 국내에는 오지 못하다가 우리나라가

민주화 돤 후 1990년 국내에 잠시 돌아와 KBS-TV 트집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애기를 들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독신으로 살던 님은 1995년 3월 30일 미국에서 세상을 뜨셨습니다.

게시일 : 2013. 5. 2.

    

김천애 - 봉선화  

게시일 : 2016. 4. 27.

   

 

         Upload : 2014. 4. 16. 00:22  朴泳柱 作       



출처 : 영주 블로그
글쓴이 : 朴泳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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