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黃昏)
시인 이육사
내 골방의 커어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내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 십이월 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산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 푸른 커어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지는 새 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카페9988에서 가져온 글
이육사 시인은 목가적인 필치로 작품 활동을 한 시인(1904~1944).
일제 말기 대부분의 문인들이 변절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민족적인 신념을 가지고 일제에 저항했다.
주요 작품으로 <절정>, <광야>, <청포도>, <교목> 등이 있으며,
1946년 유고 시집인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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